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지미에시 3세 (문단 편집) == 여담 == * 당시 유럽을 초토화시키던 [[중세 흑사병|흑사병]]으로부터 폴란드의 피해를 줄이는데 크게 일조하기도 했다. 그는 흑사병의 소식을 듣자마자 국경과 지방의 성들에게 봉쇄령을 내리고 여행자들의 이동을 막는 정책을 폈는데, 이는 흑사병의 확산을 막는데 효과적이었고 다른 나라가 인구가 반토막씩 날때 사망률 20%의 피해로 그쳤다. 폴란드는 원래부터 카지미에시 대왕 이전에는 경제에서 농사 비중이 대부분이라 다른 나라들 처럼 상업에 종사하여 이동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는 점도 국경봉쇄로 일어난 손해를 막는데 한 몫하였다. * 'Wielki'(대왕)이라는 별명 외에도 '농민왕'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는데, 귀족과 성직자들에게 착취당하던 농민들의 권리를 보호해줬기에 농민들의 칭송을 받았기 때문이다. 야사에 따르면, 왕비가 "경관을 감상하는데 방해된다"는 이유로 한 평민의 집을 박살내자 그 평민에게 보상금을 지불해줬다고 한다. 또한 농민들을 대하는 데에도 스스럼이 없어서 밤중에 농민들의 집에서 묵고 가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 저 멋들어진 초상화는 그가 세운 폴란드의 명문 대학교인 [[크라쿠프]]의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중앙 강당에 조카 [[러요시 1세]]의 딸 [[야드비가]]의 초상화와 함께 6미터 사이즈로 걸려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대학교]]에 [[세종대왕]] 어진이 걸려있는 셈이다. 여러모로 폴란드의 지식인들과 함께 고생이 많았던 초상화인데 [[나치 독일]]이 이 대학의 지식인들에게 [[폴란드 침공|폴란드의 멸망]]을 전하며 지식인들에게 복종할 것을 요구할 때 대학 중앙 강당에서 복속되었으며 [[소련]]이 대학에 들이닥쳐 [[카틴숲 학살|지식인들을 학살]]할 때도 살아남았다. * 폴란드에서는 여러 모로 한국의 [[세종대왕]]과 비슷한 위상에 있는 인물로, 폴란드 50[[즈워티]] 지폐에 그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